안녕하세요, edm아트유학입니다~
미술유학을 준비하며 미술공부를 하다보면 그래피티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는데요~
그래피티는 이탈리아어 graffito의 복수형으로
벽이나 그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도시의 벽 등 외부 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거리 미술로 스트리트 아트 또는 어번 아트라고도 합니다.
그래피티(graff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입니다.
분무기(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spraycan art' 'aerosol art'라고도 하죠.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근대 낙서화(modern graffiti)는 근대 도시에서 발생하면서 주로 마커와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하고 있고,
그것은 ‘68 파리혁명에서 표현 및 선동 수단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선 70년대 초 뉴욕의 Taki183의 지하철 낙서를 그 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tag)을 남긴 인물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화가 범람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人)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는데,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고,
이것들은 즉흥적·충동적이며 장난스럽고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이었습니다.
랩 음악과 브레이크 댄스를 즐겼던 이들은 거리의 벽, 경기장, 테니스장, 지하철 전동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 곳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낙서가 큰 도시문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75년도 거리의 낙서화를 모은 최초의 전시회가 '아티스트 스페이스'에서 열렸습니다.
그후 81년 '뉴욕/뉴 웨이브' 전시부터 확고한 위치를 갖게되며 언더그라운드 영화배우들이
이스트 빌리지에 'Fun'갤러리를 열어 마침내, 83년 뉴욕 시드니 제니스 갤러리에서 후기 낙서화라는
전시회로써 고급예술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Writer’, ‘Burner’로 칭하고
사이 톰블리, 프랭크 스텔라, 장 뒤뷔페, 잭슨폴록, 그리고 멀리 피카소와 뒤샹에 이어
그들이 실험하지 못한 '대 사회적인 시도'를 성공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엿한 공식적인 미술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그래피티가 도시의 골칫거리에서 현대미술로서 자리잡은 것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공이 컸습니다.

바스키아는 정식 미술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도 단번에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어설퍼 보이는 그림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표현하였는데,
주로 자전적이야기·흑인영웅·만화·해부학·낙서 기호·상징·죽음과 관련된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로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미술대학(시각예술학교)을 다니던 이들과
유흥가에서 어울리게 되었고,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도 그렇게 만났고,
이들이 활동했던 뉴욕을 중심으로 1980년대 이후 유럽의 도시들에서도
자유와 반항의 메시지를 담은 거리미술이 성행했습니다.
바스키아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낙서화처럼 보이는 것들로
벽면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그린 그림이 바스키아를 통해 캔버스로 옮겨오자
그것은 새로운 미술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낙서화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낙서화는 어떠한 형식적 제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낙서는 일탈적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피해 빨리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는 기존 미술의 권위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낙서화를 그린 이들은 주로 슬럼가에 사는 10대들이었고
그들의 낙서에는 사회의 그늘에 사는 이들이 가지는 ‘저항’ 의식이 담겨있었습니다.
당신이 미술유학을 떠나 처음 그래피티 아트를 접한다면 그 안에 담겨있는
그 정신을 가슴가득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